김우중을 위한 변명 몇가지


이글 댓글 달다 넘 길어져서 글로 올리는 데요 위에 나온 걸 흐름 따라 반박해보자면요. 저게 사회문화경제적으로 최소한의 개념도 없는 글인 이유가
김우중은 우선 그냥 좀 파는 수준이 아니고 건국이래 최고의 세일즈맨으로 불렸고 섬유부문을 수출 1위 종목으로 끌어 올립니다.  이때까지 김우중이 박정희 시혜 받은 건 딱 하나입니다. 수출훈장 받으러 갔다가 박정희가 먼저 사제관계를 안 거.

이 위세를 이용한 점이 분명 있긴 한데
당시 50년대 적산기업을 물려 받은 뒤 너무 커진 재벌은 그때도 문제였습니다. 서울 복구 몰빵 받은 현대의 재벌화도 심각했기 때문에 다시 이 기업들에게 자신들의 계획경제실패로 인한 판매부진/재고부담으로 이어진 도산기업을 주는 게 정치적으로 부담이 되던 상황이었거든요.

이 망한 기업들의 재고를 중동특수+원단중심 다변화의 글로벌 세일즈로 떨어내고 정상화시키자 중동특수가 겹치면서 소위 잭팟 수준의 성공을 거둡니다. 위에 이야기한 무리할 정도의 해외지사 진출로 바이어와의 릴레이션쉽을 가져간 게 성공비결이고 이 중심에는 정부의 정책적 만기연장 및 저리융자, 당시 초강성파업으로 멈춘 공장을 정상화하며 직원들을 끌어 안는 '대우가족'경영 그리고 결정적인 포인트, 일찌감치 글로벌화한 판매네트워크였습니다.

지금도 정부와 채권단들이 하는 거예요. 베트남을 비롯한 중국에서까지 아직도 김우중의 세일즈방식을 개발도상국가들의 성공적인 해외진출 사례로 배우고 베트남청년사업가 양성교육과정의 교사로 초빙된 이유입니다.

이 부분에서 위에 나오는 제일은행의 만기연장 이야기가 나옵니다. 당시 모든 기업이 정주영회장이 현대중공업 만들고 국가가 채무보증해줘야 돈 빌려주던 국책은행 시절이라 분명 인간적 네트워크가 있었지만 조선일보처럼 밤문화 같이 즐기면서 일본에 차관들여와 기생관광호텔 만든 거 아니거든요? 그래서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거고요.

고려피혁 그러니까 SG물산 이야기하는데 저때 한국에서 제일 현찰 많은 기업 중에 이미 섬유수출쿼터 미리 확보해 미국시장을 점유하고 있어서 인수할 곳도 거기 밖에 없었어요. 미국의 자국시장 보호를 위한 규제 상황이라 정부가 떠맡기듯 준 것때문에 불편하고 싫어했다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특히 자신은 섬유쟁이인데 도요다가 뒤통수 치고 망한 새한자동차를 받아오는 데 난감했다하죠. 섬유협회보 인터뷰 내용이라 가감은 좀 해야지만... 

나중에 5공 때도 싫어한 걸 보면 맞긴 한듯... 거기다 GM이랑 50:50이라 국내판매재고만 떠앉는 상황이었죠. 물론 GM 쫓아내고 나서는 애지중지한 게 자동차입니다.

당시 위의 고려피혁, 새한자동차, 한국기계, 나중의 디스플레이원재료의 전기초자도 그렇고 군사정권 때도 다루지 못할 정도의 목숨걸고 시위하던 초강성노조들을 위에 언급한 방식으로 정상화하면서 정권의 안정+본인의 성공+일자리 창출+경제발전의 선순환을 일으키는 데 있어서는 대한민국 최고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심지어 망해서 아무도 안사가던 대한전선 가전사업부(TV터져 가족이 다 죽음)를 인수해 대우전자를 만들고 먹여 살리는 데 성공합니다? 지금으로 치면 MBK파트너스(국책은행)의 전문경영인(김우중)인거죠. 

이후 90년 초반 위 노사분규때 김우중회장은 90년대 한국에서 탑5 안의 재벌회장인데도 대우자동차 인수 뒤에는 1년을 사원기숙사에서 살았고요. 거제에서 노사분규가 일어나면 현장에서 숙식했습니다. 이후 화합을 이룬 대우그룹은 파업 없기로 유명하고 노사화합잘하기로 정평이 납니다. 이때의 가족개념은 꽤 확고히 자리 잡아 그룹해체뒤 대우차 같은 경우는 직원아파트 1채에 3가족이 들어가 살면서 경영정상화를 위해 노력합니다. 이런 특별한 대우문화는 70년대 계획경제실패로 일자리를 잃고 서슬퍼런 군부독재에도 목숨걸고 싸우던 노조원들을 설득하고 달래서 결국 재고떨이하고 부채상환 미뤄 정상화한 수십년의 이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옥포조선소 이야기 나오는 데, 유명한 일화입니다. 못하겠다고 하는데 정부가 떠넘겼죠. 이미 중동특수 뒤에 손댈 수 없게 된 재벌집단들 사이에 대우를 키우겠다는 건데 본인이 다시 한 번 거부합니다. ㄷㄷㄷ 이만한 배짱은 정말 드물죠. '옥포조선소 건설비 전액지원', '조선불황에 대비 미국 7함대 수리조선 유치''옥포를 대단위 종합기계단지로 지정' 관철시킵니다. 괜히 거제초중고교 다 가지고 신 취급 받는 거 아녜요. 이건 특혜가 아니고 그냥 지금의 거제를 만든 사람이 김우중인 겁니다. 인정할 건 인정해야죠.

헐값인수가 아니고 허가내줄 테니 그냥 해보라는 거 협상해서 판을 만든 거까지 머라 하다니;

그리고 여기가 결정적인데, 90년대 소위 에스페로 팔고 경영정상화해서 번 돈 어디다 썼냐고요? R&D하고 대우자동차 지분인수요-_- 매출의 무려 5~6%, 대우중공업은 10%를 때려 박습니다. 보통 이런 R&D가 5년 정도 뒤에 성과가 나온다는 점을 감안하면 좀 아쉬운 부분이죠.

본인이 70년대 인수한 대우건설과 대우중공업을 제외하면 다 폭발하거나 망하거나 한 기업 인수해서 겨우 정상화했다 보니 국내 인지도가 개똥망이었거든요. 그래서 이걸 바꾸겠다고 대대적으로 해본 건데 아남반도체처럼 타이밍이 별로였죠...

'만들면 팔릴지어다'이건 저 제조업공장들 멈췄을 때 사기 진작 캐치프레이즈고요. 저 대출은 대우가 빌려서 인수한 게 아니고요. '동유럽부흥은행(EBRD)'에서 빌려오고 대우는 경영만 해서 외형을 부풀린 형태였어요. 아무도 가서 경영 안할라 한 것도 아니고 대우가 GM 같은 글로벌 플레이어들을 밀어내고 거둔 성과였어요. 근데 국내서 IMF 터지면서 장부상 환차손이 어마 무시하게 발생하죠. 

지금 외국계들 MS처럼 바하마 제도 등에 중간 홀딩스를 두고 환율관리했음 모르겠는데 그게 한국은 법적으로 안되서 한국에 놔둔 바람에 데미지가 심했던 겁니다. 이게 김우중이 전경련회장 되자마자 정부 탓에 'IMF나서 수출기업 다 망하게 생겼다 있는 돈 다 털어서 기업 지원해줘'의 근거가 됩니다. 실제로 그래서 한 2년 밀어주죠.

김영삼 당시 까지야 사실상 관치금융이던 한국의 주권이 정부였으니 가능한 거지 IMF에 주권이 넘어간 뒤에도 계속 버텨 달라고 하면서 개기니 심지어 전경련 회장님이시니 타겟이 되는 게 당연...

정부도 딸랑 800억 달러 밖에 없는데 5조 빌려달라니 미칠 판국. 

물론 저 회사채 제한은 말이 많습니다. 정확하게 대우만 겨냥한 추가조건이었거든요. 부채비율 200%넘으면 안된다.IMF는 아니라고 주장하는데 이미 나이지리아 유전, 프랑스 전자업체, 폴란드/우크라이나 자동차 등 위에 언급한 EBRD 대형 딜에 전부 물먹은 미국계의 강력한 압박이 있었다는 설은 신빙성이 높습니다. 이후 곧바로 넘겨 받은 게 또 다 미국계고 걔네도 러시아 모라토리엄 때문에 개피보고 손 털었지만 ㅋ
그리고 삼성이 노무라 건으로 안 게 아니고 대우전자 CFO 김모씨가 잘린 뒤 내부자료를 그대로 전해줘서 알고 있었던 겁니다. 한국경제신문의 대우패망비사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이 당시 상황은 대우그룹 분식회계 판결문을 보면 잘 나와 있습니다. 니네가 착복한 거 아닌 거 알아. 그런데 이제 한국도 자본주의시장에 편입됐는데 분식회계라는 걸 앞으로 막기 위해서는 일벌백계가 필요해. 과거와의 단절 개념이니 징벌적이어도 어쩔 수 없다. 이 역시도 구글링하면 판결전문 나옵니다? 최종판결은 서울고등법원 2006나14648 입니다만 이 내용은 1심인가 그래요.

대우는 당시 대기업 중에 가장 수출비중이 높았습니다. 80%. 수출하고 환어음을 할인해야 공장을 돌리는 데 그게 환율때문에 박살났다 보니 당시 통상적인 대기업들의 분식규모(3-5조원)을 훌쩍 넘는 수치가 적힌 거고요. 

정부도 이런 상황-부도덕이라기 보다는 불가피한 상황이라 눈감고 최대한 봐줄려고 했는데 분식회계 터지면서 정부/대우 둘다 고난의 시작이 됩니다.lg-현대 반도체 빅딜 뒤 진행하려던 재벌개혁이 전부 브레이크 걸리고 대우는 공중분해 거진 30조 때려 박힙니다.

베트남 골프장이야기는 진즉 자기가 재벌회장일 때 자식한테 안물려준다면서 쫓아낼 때 정상적인 자기 재산으로 자식한테 증여했고 세금도 낸 거라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들 재산임. 끝. 


그 사람 유명한 일벌레이자 4무 인간입니다. 술안하고(물론 친구랑 소주 정도는 먹습니다. 룸사롱을 안간다는 말) 골프안하고 안쉬고 집이 없(출장맨 ㅠ_-) 죄가 있고 이미 죗값도 치렀고 남은 벌금은 위에 설명했고요. 그래서 자식이 가지고 있는 골프장에서 걷기만 한다는 데 저런 걸로 조리돌림 모욕주는 건 좀 아닌 거 같아요.

망할 만한 게, 기본적인 기업이념이 '가족'개념이라 상시구조조정을 요구한 IMF랑 대놓고 싸웠고 
위의 80-90년대 이미 2세 승계를 원천 차단하면서 본인 자신부터 전문경영인선언한 덕에 2세 라인업(40대)실무진과의 네트워크의 부족했고
'중후장대'개념으로 정부 또는 은행의 금융조달을 요구하는 형태였기 때문에 기업스타일이 차입경영을 해야 했습니다. 이때 한국은 국책은행이었다 보니 여론을 의식한 여러 브랜딩(김우중 자체 브랜드화 ㅋ)으로 위기를 극복하려는 퍼포먼스를 많이 보였습니다. 외국애들한테는 얄짤 없는 거죠;

이대로 이쪽 지점의 파의 아쉽더군요.
대우 욕하기 머한 게 저 2년 동안의 분식회계 빼면 노조갈등도 없었고 망해서 없어질 일자리 잘 유지시켰고 세금도 잘냈고 심지어 경쟁력조차 있었습니다. 국가시책으로 북한/러시아/동유럽에 진출도 잘했습니다. 위에 말한 것처럼 차입경영이라 노태우의 북방외교, 김영삼의 OECD가입 등을 위해 제일 열심히 뛰어야 했기도 해서 정부가 시켜서 EBRD도 들어간 거라 김우중이 5조 내놓으라고 할만한 거기도 하고요. 어떤 의미로는 사적 영역의 공기업적 역할을 굉장히 많이 했던 곳이라 쩝... 

고3때 지금은 망한 씐나게 두들이는지 평일인 내일까지 기다려야겠네요.

새벽에 그냥 댓글달고 자려다 일어나 컴퓨터 앞에 쓰는 글의 여담으로
입사하면 삼성은 책상에 연필까지 준비되어 있고 현대는 책상은 있고 대우는 아무 것도 없다라는 말이 있었다는 데
이게 대우는 세계 네트워크를 이용한 출장과 현장 릴레이션쉽을 중시했고 이를 위해 아예 호텔을 거점지역에 지어 경비도 아꼈습니다 ㅋ
현대는 노가다 십장 마인드라고 폄하하지만 그 보다는 현장 책임자의 권한을 중시하는 문화고요. 지금도 비딩 들어가면 이사가 담당 과장들 의견 듣고 추인하는 모양새를 취합니다.
머... 삼성은 그래요... 쩝; 좋은 의미의 책상에 연필이란 게 아닌데; 머 그렇습니다.

이미 오랜 시간이 지난 일이지만 대우의 저 사태는 대우그룹으로서도 한국으로서도 불행한 일이었지만 엔론처럼 호화롭게 살려고 했던 것도 아니고 치부하기 위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김우중 회장의 10억 자택이 사재출연에 빠졌었는데 그건 이미 대출을 중복으로 여러 차례 받아 경매도 안되는 물건이라 그랬던 거고... 본인은 이미 여러 차례 사재출연을 했었습니다. 

이 섞어서 5천원정도면.. 혼자서 안뜨고
일찌감치 소그룹 회장체계로 돌려 전문경영인을 육성했고 본인은 그룹 주요 행보를 챙겼고-수펙스랑은 약간 다릅니다. 총회장 체제라
요즘 같이 개떡 같은 재벌 승계 과정이랑 다르게 자식들에게 물려줄 생각은 일찌감치 하지도 않았으면서 여자 문제도 없었고요. 

과거의 방법으로 시대변화에 저항해 무너졌을 뿐 막 부도덕하거나 그런 사람 아닙니다. 그래서 아직까지도 말이 많고 아버님세대들이 아쉬워라 하는 거예요. 말뿐인 삼성의 가족 어쩌고 따위랑 다르게 대우가족경영은 인간적인 면이 있었고 또 망하고 나서도 이 인간적인 면으로 인고의 시간을 견뎠지만 이후 M&A과정에서 산산히 부서지고 흩어지고 그래서 대우라는 이름에 한도 애도 많은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