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의 17년 롤드컵 우승을 축하하며 적는 글

글을 적기에 앞서 일단 삼성의 17년 롤드컵 우승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1세대 롤 프로게이머로서 포지션 변경도 성공적으로 했고 결국 프로게이머로서 롤드컵 우승이라는 최정점을 찍은 엠비션 선수도 축하드리구요. 경기 끝나고 삼성 선수들의 인터뷰를 보면서 삼성이 이길 수밖에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다시 한 번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하지만 SKT팬으로서 마지막 페이커 선수의 울음을 보고 정말 많은 생각이 들더군요.. 정리가 잘 되지는 않지만 뭔가 글이라도 남겨야할 것 같아서 짧은 제 생각을 적어보려고 해요.

SKT의 3연속 롤드컵 우승을 응원하면서 이번 롤드컵을 지켜봤습니다. 리프트 라이벌즈부터 SKT의 경기력에 대해 의문이 생기긴 했죠. 지역별 대항전인데 너무 오만했던것 아닌가 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습니다. 사실 이 이후로 좀 많이 실망하기도 해서 LCK 경기를 챙겨보지 않았어요. SKT경기는 매번 그래도 봤었는데, 부진한 성적을 계속 보여주는 가운데 피넛과 뱅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죠. 맘을 많이 닫았는데, 그래도 이번 롤드컵을 그렇게 억척스럽게 진출하면서 그래도 SKT 저력은 있구나, 롤드컵도 기대해도 되겠지 하고 응원했어요.

그룹 스테이지부터 버거워하는게 느껴졌어요. 5게임 전부를 치르면서 간신히 올라오는 걸 보면서, 화가 났죠. 물론 선수들의 압박감이나 스트레스, 밴픽구도 예상 이 모든 걸 제가 알 수 없지만, 응원하는 팬 입장에서는 힘들게 올라오는 모습을 보면서 화가 날 수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예전만큼의 기량이 보이질 않으니까, 매번 잘 해주는 모습을 보여줬고 압도하는 모습을 보여줬는데 역으로 압도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화가 났죠. 롤 커뮤니티에 SKT 경기 이후 보이는 비난에 동조하지는 않았지만, 어느 정도 공감도 했던 것 같구요. 그런데 4강전 이후 피넛 인터뷰를 보고 생각이 바뀌었어요. 교체 출전을 계속 염두에 두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서브로 나와서 부담감없이 할 수 있었다라는 말을 듣고 아, 이들이 지금 엄청나게 부담감을 느끼는구나, 팬 입장을 이렇게 속이 타는데 당사자들은 어떨까... 안타깝더라구요.

그래도 결승전 진출을 깔끔하게, LCK팀이 둘 다 LPL팀을 기세 좋게 꺾고 올라와서 한 껏 기대했는데... 1세트는 그렇다쳐도 2세트 밴픽부터 엄청난 의문이 들었습니다.. 거의 똑같은 밴픽으로 재경기? 놀라우면서 동시에 황당한... 코치진과 무슨 이야기가 돌았나 궁금하기도 하구.. 그런데 자신감을 보여주는 밴픽이라하기에는 경기에서 너무 허망히 무너졌어요. 결국 3세트 밴픽에서 잔나와 케넨을 2카드의 밴을 소모했어야 했죠. 그래도 블랭크 교체출전하면서 승기를 잡아내나 했는데, 2세트에서 보여줬던 뱅 선수의 바루스앞점멸궁에 이어서 3세트 트타 앞점프로 짤리고 경기가 확 뒤집혀버리는.. 그렇게 그대로 넥서스 포탑 2개 까이고.. 허망하게 졌죠. SKT가 던져서 삼성이 이겼다? 이건 절대 아닙니다. 분명히 삼성의 경기력은 압도적이었습니다. 1세트 삼성의 운영은 정말 SKT팬으로서 경기 자체가 숨막혀서 보기가 힘들었고 2세트 엠비션 자르반의 깃창에 이은 큐베 나르의 CC 연계는 할 말을 잃을 정도.. 삼성이 정말 많이 준비했다라고밖에 결론을 내릴 수가 없어요.

아 그런데 정말 페이커 선수 눈물 훔치는 모습은... 너무 보기가 안쓰러웠어요. 어떤 생각이 들까? 자기 자신에게 분해서 우는 걸까? 자신에게 걸려있는 기대와 중압감을 이기지 못한 것에 우는 걸까? 아니면 대부분의 경기 후 반응처럼, 팀원에게 분해서 우는 걸까? 한 번도 승리하지 못하고 3:0으로 져서 우는 걸까?... 눈물에 많은 것이 담겨있었겠죠.. 정말 진심으로 위로해주고 싶었습니다.. Faker가 아닌 상혁이를 위로해주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어린 나이에 정말 빠르게 세계 정상에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겸손하고 자신감 넘치고 가끔은 엉뚱하고 발랄한 선수로만 알았는데... 인간적인 면모를 보게 된 것 같아요. 힘들겠죠. 눈물을 보인 이유가 어찌되었든 간에, 데뷔 이후 처음으로 눈물을 보였으니까요. 경기 직후 악수도 못 할 정도였는데. ..정말 아쉽지만 전 이번을 계기로 SKT가 다시금 빛을 볼 수 있었으면 합니다. 논란과 비난 모든 부분을 다시 실력으로 극복해서 보여줬으면 해요. 솔직히 이번 SKT 패배의 원인은.. 개인적으로 뱅 선수의 실수와 기타 팀원과 의사소통의 혼선이라고 생각합니다만, 프로세계의 모든 걸 알 수는 없겠죠. 다만, 결승까지 오는데 Faker선수가 예전과 같이 자신감있고 적극적인 픽보다는 팀을 위한 픽, 어찌보면 소극적인 픽과 플레이 방식을 많이 보여줬다는 생각에서 팀원들이 Faker선수에게 많을 위로와 힘이 되어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건빵 반바지랑 쿨맥스 나시티 사고.... 하면 일반통화랑 왔는데


SKT 푸념은 여기까지 하고, (좀 많긴 하죠.. 애정가는 팀이라 이해해주세요..ㅠ)
큐베 선수는 예전 마린을 보는 것 같아요. 다만 마린은 환상적인 뒷텔운영 그리고 벵기와의 호흡이 찰떡이었다면 큐베는 그냥 묵묵히 혼자서 다 하는 느낌? 운영도 그렇고 팀적인 플레이, 합류도 그렇고 장난없구.. 3세트 초가스 완전 망했을 때도 묵묵하게 크더니 한타때 정확하게 딜러진 끊어주고 진영붕괴시키고.. 크라운 선수도 사실 페이커 상대로 심리적으로 압박감을 느꼈을 텐데 3연속 말자하 픽 하면서 자신감있게 해줬구요. 코어장전 선수! 준결승전 MVP받을만큼 서폿으로 캐리했다고 밖에 할 말이 없는데, 잔나 플레이는 정말 환상적이었어요.. 마지막 경기 이기고 살짝 눈시울 붉어지면서 팀원 껴안고 하는데 조금 울컥함..

뇌물 드시고 이번만 좀 일찍 들가서 본거야~
삼성과 SKT 팀원들 모두 고생했고, 서로 많은 생각이 들 것 같아요. 하지만 아직도 LCK가 롤 프로판에서 건재하고, SKT가 아니어도 LCK에는 정말 강한 팀이 있다는 것을 몸소 증명해준 삼성 갤럭시! 정말 축하드립니다!!!